암호화폐는 원래부터 익명성, 탈중앙화, 검열 저항성을 핵심 가치를 기반으로 탄생했습니다.
초기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거래는 지갑 주소와 트랜잭션 기록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고 개인의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같은 정보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암호화폐가 현실 금융 시스템에 접목되기 시작했고 특히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실명화된 디지털 자산 거래’가 확산되면서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의 수준도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이름과 전화번호만 입력하는 수준을 넘어서 거래 내역, 자산 보유 기록, 출처, 목적, 사용처에 이르기까지 매우 구체적인 정보 요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사용자들은 “도대체 내 개인정보는 어디까지 제공되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암호화폐와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개인정보 요구 수준이 어떻게 다르며, 그 허용 범위는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암호화폐는 ‘간접적’ 식별 구조, 스테이블코인은 ‘직접적’ 연결 구조
전통적인 암호화폐 시스템은 지갑 주소를 기반으로 동작합니다. 이 주소는 0x로 시작하는 무작위 문자열이며, 이 자체로는 누구인지 식별할 수 없습니다. 즉, ‘간접적 익명성’이 보장되는 구조로서, 트랜잭션은 모두 공개되지만 그 주체가 누구인지는 블록체인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거래소를 통한 구매, 송금, 결제 기능이 활성화되면서 KYC(실명 인증), AML(자금세탁방지) 요구가 거래 전 단계에서 강제되고, 지갑 주소와 실명 정보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환경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WEMIX$나 USDC를 거래하려면 거래소 가입 시 제출한 이름, 생년월일, 주소, 계좌 정보가 해당 지갑과 자산 흐름 전체에 연결됩니다.
이로 인해 단순한 코인 이동도 곧바로 실명화된 사용자 정보와 연결되며 거래소, 지갑 서비스, 심지어는 국가 기관까지 그 흐름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기존 암호화폐는 사용자 정보와 거래 정보가 분리된 구조였다면 스테이블코인 중심의 생태계는 실명과 거래가 한 시스템 내에서 통합되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 정보 수집 범위는 어디까지, 누가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문제는 단순한 신원 확인을 넘어서 스테이블코인을 거래하거나 보유하는 과정에서 수집되는 정보의 범위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스테이블코인을 거래할 때 제공되는 정보에는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출금 은행 계좌는 물론 거래 목적, 자산 출처, 예상 이용 금액, 기타 소득 정보나 본인 인증 영상까지 요구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정보는 거래소나 지갑 앱에 저장되며 법적 요청에 따라 금융정보분석원(FIU), 국세청, 검찰 등 수사기관에 제출될 수 있는 데이터로 간주됩니다.
더 나아가 일부 플랫폼은 사용자의 거래 패턴, 지갑 사용 빈도, 거래 상대방 정보 등을 기반으로 위험도를 평가하거나 이상거래 여부를 자동 판별하는 알고리즘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즉, 사용자 본인이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신용점수’와 유사한 디지털 행동 프로파일링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정보 수집의 범위와 사용처가 광범위해지면서 사용자는 점점 더 많은 민감 정보를 넘겨야만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결국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이 점점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법적으로 허용되는 수준과 기술적으로 가능한 범위는 다르다
개인정보 수집에는 명확한 법적 제한이 존재합니다.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 수집 시 목적 명시, 최소 수집, 명확한 동의, 저장 기간 제한 등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서비스 제공자는 이를 어길 경우 과징금이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은 거래 기록이 체인에 영구히 남는 특성상 기술적으로는 수집하지 않아도 이미 추적 가능한 정보가 상당히 많으며 지갑 주소만으로도 사용자 행동 패턴을 역산하거나 심지어는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즉, 법적으로 수집하지 않아도 기술적으로 알 수 있는 정보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규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모르게 드러나는 프라이버시’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또한 많은 서비스들이 해외 서버에 데이터를 보관하거나 외부 업체를 통해 실명 인증 및 데이터 분석을 위탁하고 있어 개인정보가 제3국으로 이전되거나 사용자 동의 없이 2차 활용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기술이 허용하는 수준과 법이 허용하는 범위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한, 개인의 정보는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 디지털 자산 시대, 정보 제공은 선택이 아닌 협상이 되어야 한다
이제 스테이블코인이나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투자나 송금을 넘어 개인의 금융 신원 정보를 플랫폼에 넘기는 행위와 거의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암호화폐가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자산이었다면 이제는 거래의 안정성과 제도적 보호를 받는 대신, 실명 기반으로 전환되는 흐름이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는 여전히 중요하며 정보 제공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한 일방적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보를 제공하되 그 수집 범위와 활용 방식, 저장 기간에 대해 명확히 설명을 받고 사용자가 이에 대해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지털 자산 시대에는 프라이버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디지털 협상력’이 사용자에게 요구되는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도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질과 보호 수준, 사용자 권리를 존중하는 구조가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며 이는 곧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서비스보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가 살아남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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